언제부터인지, 왜인지도 모르는 채로, 막연히 송네 피오르드를 가보고 싶었다. 언젠가는 가보리라 마음에 품었다. 그래서인지 영화나 책에서 북유럽이 배경으로 등장할 때면 장면을 더 유심히 보고 상상하게 되었다.
하얀 밤, 푸른 숲이라니!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4개국을 여행하는 내내 해가 지기도 전에, 여전히 밝은, 한낮 같은 밤에 잠이 들었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그래도 아쉽다는 듯 황홀한 붉은 석양과 함께 해가 저무니 낮은 길고 빨리 동이 터올라 밤은 짧다. 집들은 집보다 나무와 숲과 더 가까이 붙어 있어 초록이 삶의 일상이다. 하얀 밤, 푸른 숲, 북유럽을 정직하게 표현하면서 더불어 신화를 연상하게 하는 작명이다. 여행을 다녀와서 시차라는 게 이런 건가 싶은 느낌을 처음 받았다. 더 늦으면 기억 속에 묻힐 것 같아 짧은 여행 후기를 남긴다.
덴마크, 행복을 꿈꾸는 나라
덴마크 코펜하겐 투어는 덴마크에서 호떡 장사를 하고 있는 아름다운 청년, 브루스님의 안내로 이루어졌다. 뭔가 크게 볼 것이 없다고 느껴지는 도시의 인상, 검소하고 소박해 보이는 거리 풍경으로만 기억될 뻔했던 덴마크는 브루스님의 친절하고 풍부한 안내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의미 있는 나라이다.
가장 눈에 띈 건 자전거다. 자전거를 타면서도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유유자적 폰을 사용하는 사람들, 차도와 인도 사이에 당당하게 넓게 자리를 차지한 자전거 도로부터 버스에도, 육교에도 자전거를 위한 공간과 길이 마련되어 있다. 이들이 자전거를 타는, 타려는 이유는 건강을 위해라고 한다. 나의 건강과 지구의 건강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고밖에.
6층 이상의 고층 건물이 거의 없었는데, 그 이유가 걸작이다. 하늘 조망권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모두의 하늘을 모두가 자유롭게 보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이라니. 당연한 사실에 놀라야 하다니. 자연은 인간이 소유할 수 없는 것임에도 풍광이 멋진 곳에는 여지없이 자본이 들어와 소유하고 제한하고 독점하면서 주인 행세를 하는 것에 의아함을 넘어 염증을 느끼던 나의 생각이 이해받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상생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신뢰를 가치롭게 여기고-지하철을 타는데 표를 확인하는 사람이 없었다-, 대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 민주주의는 대화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에서 버스도, 지하철도, 심지어 다리도, 도서관도 일방향이 아니라 마주 보게, 눈인사라도 나누게, 서로를 바라보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세금 천국이라는 말도 있지만, 의사가 공무원인 나라. 대통령의 동상을 실물 크기 그대로 잔디 위에 세워 그냥 그대로 걸어 나오면 우리와 바로 대화를 나누고 어울릴 것만 같다.
하루 종일 있어도 행복했을, 나도 관람객도 작품이 되게 하는 곳,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까지. 자코메티의 책을 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지, 자코메티의 작품을 직접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었다.
이틀 동안 덴마크를 충분히 보고 느낄 수는 없었겠지만 참 좋았다. 함께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열심히 찾는 나라를 보게 되어 기뻤다. 아마 이 기쁨 중에는 첫 저녁 자유식부터 한식을 맛있게 먹은 덕분이기도 하다. 미가에서 먹은 김치찌개와 돌솥비빔밥은 정말 맛있었다.
노르웨이, 송네 피요르드 강제된 느림
항공편으로 이동하면서 짐이 지연되는 작은 소동이 있었지만, 다행히 다음 항공편으로 무사히 도착했고, 보상이라도 하듯 한밤중을 한참 넘어 도착한 호텔은 피로를 녹여줄 만큼 근사했다. 여행에서 보고 듣고 먹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쉴 곳이다. 호텔은 대부분 시내 중심가에 위치해 있어 간편한 옷차림으로 마실 나가듯 거리를 걸으며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이건 고마운 일이다.
등산열차를 타고 플뢰옌산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여행 중 유일하게 추웠던 때인데, 추위와 바람에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우리나라였다면 어묵을 팔지 않았을까. 무지 잘 팔렸을 듯한데. 이날 외에는 대부분 반팔, 선글라스, 모자, 생수가 필수였다. 북유럽 사람들은 햇빛에 결핍되었다고 할까. 30도가 넘나드는 폭염이 계속되었는데, 이들은 햇빛을 온몸으로 반기고, 몸안 구석구석까지 햇빛으로 채우겠다는 듯이 전라를 내맡겼다. 해를 대하는 태도까지도 달라도 참 다르구나 싶다.
포터 서비스에 짐을 부치고, 가벼운 차림으로 베르겐에서 오슬로로 정직한 가로 선을 그으며 이동했다. 열차, 버스, 페리, 산악열차, 다시 마지막 열차. 다양한 이동 수단 덕분에 송네 피오르드를 아주 길게 감상할 수 있었다. 이때는 사진보다 동영상을 더 많이 찍었다.
송네 피오르드에서 기대했던 설산 풍경은 볼 수 없었지만, -뮈르달에서 멀리 보이는 산 정상에 아주 조금 흰눈이 보였다.- 대자연의 한복판에 안겨 있는 느낌을 들게 했다. 페리는 멈춘 듯 미끄러지는 듯, 아주 느리게 느리게 항해했다.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상태에서 강제로 느림을 부여받았다고 할까. 20분이면 갈 거리를 두 시간 동안 느리게 가는 동안 하롱베이에서 배가 섬처럼 떠 있었던 기억도 소환하고, 강원도 동강의 아름다운 풍경도 잠시 떠올렸다. 실내와 갑판을 수시로 왔다갔다 하면서, 겨울의 피오르드를 상상하며, 송네 피오르드를 마음에 담았다. 산악열차는 곡예 하듯 굉음을 내며 달렸는데, 중간 지점에서 맞닥뜨린 장엄한 폭포수는 열차도 멈추게 했다. 시선을 압도하는 폭포수 아래에서 또한 장중한 음악을 배경으로 두 무용수가 나타났다 숨었다 깜짝 퍼포먼스를 펼쳤다. 하얀 폭포수 아래 빨간 옷을 입은 무용수의 춤사위는 모두를 감탄하게 했다.
오슬로 투어 역시 참 좋았다. 비겔란 조각 공원, 바이킹 박물관, 오슬로 시청사, 뭉크 박물관까지. 비겔란 조각공원은 반나절은 머물러도 좋을 듯하다. 인생을 테마로 조각한 인간군상들을 스치듯 본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나는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본 것을 그린다.’는 뭉크의 그림들. 관광상품인지 이들도 생활용품으로 주로 사용하는지 가게들마다 <절규>가 프린팅된 생활용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볶음주걱에까지.
저녁에도 가고, 다음날 아침에도 또 갔던, 빙산을 형상화해서 만들었다는 오페라 하우스. 경사진 건물을 등산하는 기분으로 올라갔는데 흰 대리석이 하늘과도 바다와도 수평선을 이루는 옥상정원은 빙하 위에서 앉아 하늘과 바다 사이에 서 있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칼 요한슨 거리의 악사는 오래도록 발길을 붙들었다. 마음까지도.
스웨덴, 아름다운 도시를 품은 나라
노르웨이가 자유분방하고 활달한 이미지였다면-나에게는 다소 어수선하게 느껴졌던 오슬로의 칼 요한슨 거리-, 스톡홀름은 정돈되고 깨끗한 이미지로 중세의 고풍스러운 건물들까지 세련된 안정감을 느끼게 했다. 호텔에서 감라스탄 지구가 멀지 않아 저녁을 먹고 산책 삼아 밤거리를 걸었다. 다음 날 스웨덴 일일 투어로 골목 골목을 걷고 누볐는데, 자유시간에 또 가고. 동네 마실 가듯 걸어 다녔다. 낮에 본 거리와 밤에 본 거리 풍경이 같은 장소를 다르게 느끼게 했다.
스톡홀름 시립 도서관의 원형 책장은 내가 책의 한복판에 들어와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열을 지어 줄을 세워 놓은 도서관에서 서가 사이를 유영하듯 책을 찾은 경험만 있었던 터라 사각도 아닌 원형으로 3층으로 서가를 배치하여 모든 책들이 책등을 곧게 세운 채 독자를 기다리고 있는 도서관의 풍경은 아름다운 책 그 자체였다.
핀란드, 겨울을 상상하며 다시
스웨덴에서 핀란드는 실자라인을 타고 이동했다. 객실은 생각보다 크고 넓고 쾌적했다. 바다전망을 신청하길 걸 정말 잘했다는 셀프 칭찬을. 당연 사람이 사는 집이겠지만, 아주 작은 섬들에 동화 같은 집들이 그림처럼 있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잠시지만 멍하게 무릉도원에 와 있는 듯했다. 식사를 할 때도, 잠을 잘 때도 창밖을 바라보지 않으면 배에 타고 있다는 느낌이, 흔들림이 거의 없었다.
더위는 핀란드 헬싱키에서도 이어졌다. 줄곧 겨울의 헬싱키를 상상했던 터라 당혹감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우여곡절 끝에 교회를 완성하고, 지금은 입장료까지 받는 관광명소가 된 암석교회를 다녀오고, 갑작스런 체력고갈로 헬싱키에서는 호텔에 머문 시간이 더 많다. 마지막 여행코스로 아카데미아 서점을 천천히 둘러보고, 카페 레가토에서 보낸 여유로운 시간은 여행을 갈무리하기에 충분히 좋았다.
가리지 않고 다 잘먹는다는 음식에 대한 나의 소박한 자부심은 실은 내가 한식을 참 좋아한다는 것으로 수정되었다. 돌아와서 김치찌개, 김치볶음밥, 비빔국수를 먹고 또 먹어도 맛있었다. 누구도 인정하지 않겠지만, 우리집이 우리동네 맛집으로 등극하는 순간들이랄까. 먹는 것 때문에 고생 아닌 고생을 했지만 그래도 사진을 남겨 본다. 사진으로 다시 봐도 고기들의 향연이다. 카푸치노와 시나몬롤은 헬싱키 아카데미아 서점에서 마지막으로 먹은 것이다. 서점의 공기 속에서인지, ‘카모메 식당’을 떠올리며 앉아 있어서인지, 카푸치노 한잔으로 이번 여행의 마지막 꼭지로 충분히 훌륭한 오전 자유일정을 보냈다.
트래블러스맵의 지식인 가이드와 함께 하는 현지 투어와 여유로운 자유일정은 즐겁고 안전하고 편안하게 여행을 하게 합니다. 공정여행을 추구하는 트래블러스맵의 정신에 공감하며 계속 이용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정직하고 친절하게 운영되길 기대합니다.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