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시리즈 ⑲ 트래블러스 맵]“자본 말고 사람에 이익주는 공정여행을”
전 세계적으로 관광 산업은 매년 10%씩 성장하는 추세지만, 관광을 통한 경제적 이익은 관광지 현지 주민에게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한 조사에 따르면 네팔은 전체 관광 수익의 70%가 다시 국외로 빠져나가고, 태국이나 코스타리카는 그 비율이 각각 60%, 45%에 미친다고 한다. 여행을 통한 수익의 큰 몫이 대형 여행사 또는 호텔 자본 등으로만 들어가는 현실이다.
이런 현상에 따라 ‘공정 여행’이라는 개념이 나왔다. 노동자를 착취하며 만드는 물건을 사지 않겠다는 ‘공정 무역’에 이어 “여행을 하려면 기왕이면 현지 주민에게 수익이 돌아가는 여행을 하자”는 공정 여행의 등장이다. 사회적기업 ‘트래블러스 맵’은 이런 공정여행을 주선하는 국내 1호 여행사라고 자부한다.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소 이용하기’, ‘현지에서 생산되는 음식을 먹고 지역 사회를 살리는 여행하기’, ‘현지 원주민을 통해 지역문화 소개 받기’ 등 공정여행의 기준은 관광 수익이 현지인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여행 장소의 현지 문화를 제대로 소비하고, 그 소비의 대부분이 지역 현지인의 수익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는 것이 ‘공정 여행’의 관점이다.
공정 여행은 이렇게 지역 경제를 살리는 여행, 자연을 보호하는 여행, 문화를 존중하는 여행이다. 공정여행사 트래블러스 맵의 변형석 대표는 “지역민이 운영하는 숙소나 음식점을 이용하고 현지 가이드를 고용해 적절한 임금을 보장해 준다. 또 되도록 탄소 발생이 덜한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여행 기간 중 해당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려는 노력도 기울인다”고 말했다.
여행지가 여행자에게 기쁨을 제공하는 만큼, 여행하는 사람 또한 그 지역의 경제를 살리는 데 기여하자는 취지다. 여행 경비 일부가 그 지역에 기부되면서 일반적인 여행과는 달리 여행지와 보다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는 장점도 있다.
공정 여행은 ‘공정 무역’에서 따온 개념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대등한 관계를 맺으려 노력하는 공정 무역처럼 여행자와 여행 대상국의 주민이 평등한 관계를 맺는 여행이다. 공정 무역이나 공정 여행 모두 ‘윤리적 소비’의 일환이다.
트래블러스 맵은 공정 여행을 기획하는 사회적기업으로, 행복한 여행을 통해 사회적이고 환경적 문제를 해결하는 국내외 네트워크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변 대표는 “2009년 처음에는 여행협동조합 ‘MAP’로 시작했다. 당시 청소년직업체험센터인 하자센터 내 대안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는데, 교육의 중요한 과정으로 여행을 폭넓게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변 대표는 호텔에서 먹고 자고 관광지를 휙 둘러보는 일방적인 여행이 아니라, 학생들과 함께 현지 마을에서 지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지역민들과 실질적인 관계를 맺는 여행을 했다. 이런 여행을 통해 교실 안에서 해결되지 않던 문제들이 해결되고, 학생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런 여행은 청소년에게만이 아니라 일반 여행자들에게도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다. 마침 2008년 하자센터에서 사회적기업 인큐베이팅 사업을 벌였고, 변 대표는 이를 통해 트래블러스 맵을 창업할 수 있었다.
창업 준비 과정에서 여행사의 패키지 여행 중심으로 돌아가는 관광 산업의 폐해를 알게 됐다. 기존 형태의 여행은 여행자에게도, 여행지 주민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변 대표는 “공정 여행, 지속가능한 여행을 통해 여행의 참다운 즐거움을 여행자에게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환경 문제나 빈부격차 등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공정 여행은 특정 여행 상품이기 이전에 여행을 하는 방식이자 문화를 의미했다.
대안학교 교육 일환으로 공정 여행을 시작
트래블러스 맵은 경비 절감 및 과다 경쟁으로 지역 경제 기반을 위협하고, 문화와 자연 유산을 훼손하는 기존 관광산업 구조에 대안을 제시했다. 변 대표는 “공정 여행이 만들어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 하는 사람들이다. 여행객들이 해당 지역 주민 운영의 숙소와 음식점을 이용하려면 각 지역의 네트워크가 잘 마련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처음 트래블러스 맵 창업 당시에는 현지에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하지만 현지의 사회적경제 단체들과 함께 일하게 되면서 조금씩 이런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었다.
“지역과 밀착해 여행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해야 하는 공정 여행의 특성상 얼마나 양질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유사한 사업을 진행하는 ‘착한여행’, ‘우리가만드는미래’, ‘생태관광’, ‘공감만세’ 등 20여 여행사와 지속가능한 사회적기업 네트워크를 결성하고 협력했다.”
대표적인 관광지인 네팔 안나푸르나의 경우, 현지 짐꾼인 포터들이 많이 활동한다. 이들은 대체로 헐값에 고용된다. 공정 여행은 지역민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변 대표는 “트래블러스 맵에서는 네팔 출신 여성들이 운영하는 여행사 ‘쓰리 시스터즈(Three Sisters)’와 함께 하며 그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불한다. 이 여행사는 돈벌 기회가 적은 여성들을 포터로 교육시켜 자립을 돕는 곳이다”고 소개했다.
트래블러스 맵은 이렇게 현지에 정당한 경제적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 외에 공정 여행에 적합한 콘텐츠를 만드는 일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여행지를 사전 답사하고 공정 여행의 가치를 살릴 숙소와 음식점을 찾아내려 노력한다. 여행을 통해 해당 지역의 착한 소비, 공정 무역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의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트래블러스 맵은 국내외 지역 공동체와 사회적기업을 연결해 다양한 주제의 공정 여행 상품을 개발했다. 청소년을 위한 여행 교육, 다문화 수학여행, 친환경 신혼여행 등이 대표적이다.
또 국내 공정 여행 상품으로 걷기 시리즈, 에코 투어, 도보 여행 시리즈가 있고, 해외 여행으로는 네팔 트레킹, 일본 야쿠시마 에코 투어, 오키나와 평화 기행, 아프리카 트럭킹 등이 있다.
공정 여행 상품 다양화 위해 연구소 설립
트래블러스 맵의 고객 중 70% 이상은 30, 40대 여성들이다. 변 대표는 “아무래도 해외 여행 경험이 많고, 본인의 삶을 위해 투자하려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트래블러스 맵을 찾는 편이다. 이런 사람들은 20대에 개별여행 경험을 하면서 좀 더 의미 있고 특별한 여행을 찾고자 한다. 그런 여행을 찾다가 지인을 통하거나 입소문을 통해 문의가 오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청소년에게도 인기가 높다. 실제 공정 여행이 청소년들에게 주는 교육적 효과가 크다는 이야기가 퍼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달 이상 떠나는 장기 여행의 경우 공정 여행 참가자들의 변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고 했다. 트래블러스 맵이 수학여행 등 교육 목적의 여행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다. 예를 들면 제주도에서 한라산 국립공원 관계자를 섭외해 이들의 설명을 듣고, 인근 지역 주민을 가이드로 고용해 이해도를 높이는 식이다. 제주도를 찾는 보통 관광객처럼 흔한 가이드와 코스를 선택하는 건 수학여행의 본래 취지에 맞지 않을 것이다.
2019-10-11